십자가를 지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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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rdena 댓글 1건 조회 5,938회 작성일 10-08-19 01:57본문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If anyone wishes to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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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선교사님의 댓글
땅끝선교사 작성일
무화과나무를 생각하며 (마태복음 21:18-22)
마태복음 21장은 무화과나무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시장하셔서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열매가 찾으셨지만 잎만 무성한 것을 보시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자 그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이 무화과나무의 탓이 아닙니다.
더구나 마가복음 11장 13절을 보면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아무리 예수님이 하신 일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 마지막 때에 예루살렘으로 가셨을 당시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 년에 20만 마리, 그러니까 매일 600마리 가량의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는데 양의 피가 강물을 이루었고 양을 태운 연기가 하루 종일 예루살렘 하늘을 뿌옇게 덮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양을 가지고 와서 화려한 제의를 입은 제사장들이 제사를 지냈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곳을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너무 화가 나시고 속이 상하셔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라고 말씀하시고 탁자를 뒤집어엎으시고 장사꾼을 쫓아내신 것입니다.
오늘 무화과나무의 사건은 바로 이 일이 있었던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일로 그 전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있었던 사건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것은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이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강도질하던 제사장들이요, 서기관들이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거룩한 이름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사실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나무입니다.
관상수로도 쓸 수 없고 재목으로도 쓸 수 없고 오직 열매를 얻기 위한 나무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이 선포되는 곳이고 하나님이 존귀함을 받고 영광을 받아야 하는 곳이며, 신학교는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고, 훈련시키며 성령 하나님의 조명 아래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을 받아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곳입니다.
만일 교회와 신학교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 주가 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말만 무성하게 되고, 기도하고 훈련하는 집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아집과 자신의 자아에 묶이어, 화평치 못하고 평강을 누리지 못한다고 하면 그 교회와 신학교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주일이 되면 수백만 명이 모이는 한국 교회와 신학교들이 계속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교회이고 신학교인가 아니면 존재이유가 없는 잎만 무성한 교회이고 신학교인가 확인하십니다.
모든 교회와 신학교가 오늘의 역사 속에 존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교회이고 신학교라고 말씀하실지 아닐지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정의롭고, 진실하게 살자.’ 는 구호도, 남에게 하는 조언이나 충고가 아니라,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며, 나아갈 때, 각자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십자가의 복음이 전하여 지리라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